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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stigating the Power of Prayer A San Francisco researcher looks into whether prayer can heal even if the person doesn't know he's being prayed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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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er 기도

If the sick recover because they pray or are prayed for audibly, only petitioners should get well. --Mary Baker Eddy*

Change only takes place through action, not through meditation and prayer. The Dali Lama*

Q. "When did you realize that you were God?"
A. "While praying. I realized I was talking to myself."
--The 14th Earl of Gurney (Peter O'Toole), who has the delusion that he is Jesus Christ in The Ruling Class

기도는 하느님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와 의사소통하려는 시도이다. 기도라는 뜻의 prayer는 '간청을 통해 얻는다'는 의미의 14세기 프랑스어 (preiere)에서 유래한 것이다. 기도의 가장 일반적인 사용법은 초월적인 존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기도를 중보기도(intercessory prayer)라고 하는데 이것은 초월자에게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재를 해주기를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병을 치료하고 범죄를 줄이고, 적을 무찌르고,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에서 승리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종교들은 부모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치명적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을 기도대신 의학적으로 치료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종교에는 "그리스도, 과학자 교회의 구성원(Congregants of Church of Christ, Scientist), '그리스도 교회의 추종자(the Followers of Christ Church), 및 '맏이의 총회 및 교회(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 Born*)와 같은 것이 있다(이들 종교가 의학적인 치료 모두를 금지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나, 그들은 기도로 우선 치료하기를 시도하며, 이러한 행위가 어린이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기도가 중보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의지와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그것은 신의 의지 때문이라는 신앙에 순종하는 것이 중재기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은 신앙치료의 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 'Science and Health with Key to the Scriptures (1875)'에 쓰여진 크리스챤 사이언스의 창립자 마리 베이커 에디(Mary Baker Eddy, 1821-1910)의 믿음이다.

초월자에게 중재한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세계의 존재에게 자연적인 세상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어나도록 부탁하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일로 들린다.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 편할 때 마다 그 법칙을 어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초월자에게 사건이 일어나는 자연의 과정에 간섭해주기를 원하는 것이 터무니 없다는 것에는 최소한 2가지 이유가 있다.

만약 존재한다 해도, 초월자가 만약 인간이나 다른 세속적인 생명체가 그를 기쁘게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초월자가 아니다. 에피쿠르스는 수백년전에 이점을 증명하는 산뜻한 논증을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자신들의 이미지를 따서 신을 만들었으며(anthropomorphism) 이들 신들은 만약 우리의 웃기는 행동이나 청원이 어떠한 방식이라도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완벽한 것이 아니라고 설득력있게 논증했다. 마리 베이커 에디(Mary Baker Eddy)는 분명히 에피쿠루스에 동의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우리는 완벽한 것이 바뀔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설득력있게 질문한다음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신은 인간에 의해서 영향 받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만약 초월자가 자연의 법칙을 자신의 의지대로 어길 수 있다면, 인간의 경험과 과학은 불가능해진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질서있고 법칙을 잘 따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초월자가 자연을 자기 의지대로 간섭할 수 있다면, 경험적인 세상과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의 질서와 법칙성이 불가능해진다. 만약 질서와 법칙성이 불가능해진다면, 어떻게 그것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데이비드 흄기적에 대해서 산뜻한 논증을 보여주었으며 이것은 중재기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즉, 초워자에게 일상적인 자연의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초월자에게 기적을 수행해달라고 것과 마찬가지이다. 흄이 논증하듯이, 기적을 목격했다고 믿는 것은 우리의 감각적 인식으로 보면 불변의 질서나 법칙성이 있다는, 우리의 모든 경험과 대립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합리적 추론의 법칙들은 이러한 경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적을 믿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만약 초월자의 의지에 따라서 어떤 사건뒤에 또 다른 그 어떠한 사건도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기는 커녕, 경험할 수 있다는 어떠한 희망도 포기해야만 한다. 어떤 사건 뒤따르는 사건이 일정하거나 혹인 일관성이 있어야만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흄의 접근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한 칸트의 접근 방식도 있다. "사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그 어떠한 경험도 할 수 없다." (역주 - 의역입니다. 원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only if we experience events as causal can we have any experience at all.)

만약 초월자가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을 간섭할 수 있다면 인과 가설을 검증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은 인과론적인 가설들을 검증한다. 그러므로, 과학자에게는 중재기도를 검증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중재기도의 효과를 검사하기 위해서 대조구있는, 이중맹 연구를 설계하는 과학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까? 예를들어 우리는 어떻게 엘리자베스 타그의 "원격 치료"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역주 - 엘리자베스 타그는 유리겔라를 연구했던 러셀 타그의 딸임) 국립 보건원은 몇 년간의 2백만 달러의 연구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연구에 첫 착수금으로 243,228 달러의 연방 자금을 지원했다. 그녀는 그녀의 연구에 필요한 "치유사"를 모집했다. 그녀의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치유사로서의 5년간의 경험(이 기간동안에 자기 가족이나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 아닌 일반 개인에게  에너지 치유, 영적 치유, 기도, 혹은 샤먼 치유로 그들의 전문직으로 일 한 시간의 약 반 정도의 시간을 사용한 것을 의미함)

2. 원격으로 최소한 10% 이상의 치유율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님)

3. 과거에 AIDS나 암 환자와 같이 일해 본 경험

타그의 치유에 대한 기도의 효과에 대한 연구는 자가 당착이다. 만약 신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고 일부 환자만을 치유하고 다른 환자를 치유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가에 따른 것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인지 신의 개입에 의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떠한 인과관계 연구도, 그 결과가 신이 자연적인 과정에 개입하지 않은 자연적인 현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인과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의미가 없으며, 기도가 치유에 효과가 있는지 연구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외,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치유되지 않은 사람이 자연적인 원인이 아닌 이유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즉 자비롭지 못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초월자는 자연적인 과정에 간섭하여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한번 초월자가 어떤 사건의 원인의 가능성을 도입하면, 오직 신만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하거나, 혹은 신이 오직 기도가 있을 때만 개입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어쨌든, 신이 무한히 완벽하다면, 우리의 요청이나 요구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기도로 인한 치유와 같은 개념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형이상학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며, 과학적으로 터무니 없고, 형이상학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신이 완벽한 것과 동시에 불완전하기를 요구하며, 이것은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을 조롱하는 것이며, 설사  전능하고 무한한 신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그 신을 보잘 것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연구가 수행되고, "저명한"과학 잡지에 이이것이 실리는 것일까? 예를들어,  미국 의학회가 발간하는 저널의 하나인 The Archives of Internal Medicine (October 25, 1999)는 "심장 중환자실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 중보 기도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무작위적이고 대조구와 비교한 임상 시험"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5명의 의사(M.D.)와 2명의 Ph.D.와 한명의 M.A. 및 한명의 신학박사가 이 피어리뷰된 논문에 서명했다. 이 논문에 대한 좀더 흥미있는 사항중의 하나는 비록 저자들이 실험구와 대조구간에 병원이나 심장 중환자실에 있던 시간이 별 차이가 없음에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도를 한 그룹이 기도를 하지 않은 그룹보다 덜 고통을 당한다는 그들의 생각을 만족시키는 일종의 점수 체계(그들은 이것을 CCU course score라고 부른다.)를 마련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캔사스 시에 있는 미중부 심장연구소 (Mid America Heart Institute)에서 12달이 넘게 수행된 것이다. 실험구(기도) 그룹에는 466명의 환자가 있었고, 대조구(일반 보호)에는 524명의 환자가 있었다. 환자들은 무작위로 선발되었으며, 기도는 75명 중에서 무작위로 선발된 사람에 의해서 28일동안 행해졌다. 기도 내용은 "'합병증 없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이며, 그외 어떠한 것도 부적절하게 생각되었다."  기도하는 사람은 오직 그들이 기도해야할 대상자의 이름 밖에는 알지 못하며 다른 무엇 보다도, 그들의 기도의 효과를 믿어야만 했다.

기도의 목적이 "합병증 없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병원이나 심중환자실의 기도를 받은 환자와 대조구 환자간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윌리엄 해리스(William Harris, Ph.D.)는 "기도는 표준 의학적 치료의 효과적인 보조치료 일 수 있다." (일 수라는 말은 교활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강조함)라고 말했다. 그는 기도가 표준 의학적 치료의 효과적인 보조치료가 아닐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저자들은 "기도의 효고가 어느 특정한 임상적인 결과의 범주(예를들어, 항생제의 필요성, 폐렴의 진행, 경색의 정도)에서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며, 단지 전체적인 점수에서만 결과를 볼 수 있다고 기대된다." 왜 특정한 결과, 예를들어 병원에서 입원한 기간이라던가 생존 시간과 같은 것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CCU 점수가 "직관"에 의해서 개발된 것이지 "검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점수 자체는 전체 CCU 과정의 추정치 이므로, 기도를 한 환자 그룹이 "10% 더 낫다"라는 말 이외에, 이것에 대한 임상적인 중요성을 말할 수 있는 어떠한 알려진 방법도 없다. 이 점수는 개개인의 환자가 아니라, 거대한 집단의 전체적인 건강에 관한 미약하고, 광범위한 효과를 검지하기 위해서 설계된 종합통계로만 봐야한다.

만약 그들이 정직했다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기도는 해가 되지는 않는다!" 해리스 박사와 그의 동료는 기도를 받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나타내는 인자를 찾을 때 까지 자료를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이것은 정크 사이언스도 아니다. 이것은 농담 과학이라고 부를만 하다.

그러나, 해리스 박사는 좋은 회사에 근무한다. 마리랜드 대학에 의하면 의과대학의 보완의학 프로그램의 부교수인 죤 아스틴 박사(John A. Astin, Ph.D)가, 기도, 기치료(therapeutic touch), 그리고 몇몇 다른 "영적 중재의 비전통적 형태"와 관련된 23개의 임상시험을 분석하고, 연구의 57%가 환자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스틴은 "통계적으로 말해서, 57%라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결과이다. 이것은 우연만으로는 기대하지 어려운 수치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대부분의 논문은 결과가 긍정적이다. 아스틴의 과학에 대한 기여는 다음과 같인 것 같다. "원격으로 치유하는 것이 해를 일으킨다는 증거는 아마도 전혀 없을 것이다."*

임신 기원 기도

The Journal of Reproductive Medicine Online (vol 46. no. 9, September 2001) 는 "기도가 시험관 임신- 배아 이식의 성공에 영향을 주는가? 무작위적인 임상시험 사례"라는 차광열 등(Kwang Y. Cha, M.D., Daniel P. Wirth, J.D., M.S., and Rogerio A. Lobo, M.D.)의 논문을 실었다. 저자들은 "결과는, 그렇다.. 아주 약간"이라고 한다. 예를들어, "중재기도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서 높은 임신 비율을 보였다(50% vs. 26%, P=.0013)". 우리는 이러한 연구를 대체의학/에너지 의학에서나 기대할 수 있지 진정한 과학자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다.

난 이들 연구자들이 중재기도와 기도를 받지 않은 그룹간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대조구 포함한 이중맹 실험을 하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체외 수정을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기도하기 까지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은 바로 "기도"에 대해서 정의하거나, 혹은 이것이 자신들의 보잘 것 없는 실험은 놔둔다치더라고, 이 우주의 그 어느 하나에게라도 도대체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에 대한 설명이다. 그들은 이 문제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만약 기도가 신에게 실험결과에 영향을 미치도록 영향을 준 것이라면, 그 신은 어느 때던 간에 자연의 법칙을 방해할 수 있다. 만약 신이 자연의 법칙을 어느 때라도 방해할 수 있다면, 대조구가 있는 이중명 실험에서 그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고 그 의미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그 어떠한 결과도 신에 의한 직접적인 영향 때문일 수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이 연구의 가정은 자기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신이 자연의 법칙을 자기 의지대로 간섭할 수 있다면 그 어떠한 과학도 가능하지 않다. 어떠한 것과 또 다른 어떠한 것 사이의 인과관계를 발견하기 위하여, 과학은 어떠한 법칙성을 요구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연구의 범주에 마술적인 생각이 포함된다고 생각되면, 과학연구가 어떻게 되겠는가?

과학 혹은 종교?

이 중재기도 연구가 바로 오늘날, 과학적인 연구로 통과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최소한,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과학적인 호기심 때문에 수행된 것이 아니라, 일부 잘못된 종교적인 열성분자들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신앙에 대한 실험적인 근거를 발견하기 위한 이 측은한 시도에 대한 또 다른 그럴 듯한 설명은 이러한 종교의 연구를 지원하는 주변에 엄청난 돈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종교를 지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라도 돈을 쏟아부을 준비가 되었는 개인 재단이 있다. 3가지만 들어봐도, 템플톤 자금(Templeton Fund), 퓨포룸(PewForum), 그리고 페저 연구소(Fetzer Institute)등이 있다. 정부돈도 유용하며 아마도 금액도 클 것이다. 도대체 누가 샤먼의 "원격 치유"를 연구하기 위해서 납세자의 2백만불을 엘리자베스 타그에 주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정부와 사적인 기부자로부터 기도가 건강에 좋다는 연구에 대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하버드 의과대학같은 곳에서도 제 6차 "의학에서의 영성과 치유" 컨퍼런스를 스폰서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이벤트는 수백명의 의료 전문가, 목사들, social workers 및 보험회사들이 "주류 의료와 심신 의학의 통합을 토의"하기 위해서 서로 모였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더햄에 있는 듀크 대학 의과병원의 설립자인 해롤드 쾨닉(Dr. Harold Koenig)은 신앙의 치유력과 영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 1200건이나 된다고 주장한다. 쾨닉은 쾨닉은 이들 연구가 예를들어 종교적인 행사에 자주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비해서 사망률이 낮고, 담배를 끊기 쉬우며, 좀더 운동을 하고, 좀더 사회적인 접촉이 많으며 결혼을 유지하는 기간이 긴 것등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쾨닉은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에서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더 건강하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너무 아프면 종교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며, 오직 충분히 건강한 사람만이 종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인과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증거가 영성(spirituality)으로 건강이 좋아진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

컨퍼런스의 창립자이며, 보스톤에 있는 '베스 이스라엘 디커니스 병원'의 심신의학 연구소의 소장인 허버트 벤슨 박사(Dr. Herbert Benson)는 내과에 방문하는 "60% 환자는 스트레스 관련 질병 때문이며, 이 병은 찬송이나 명상에 의한 생리학적인 진정 효과로 치료되거나 증상이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 보험회사가 이러한 주장을 무시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료 서비스로 나가는 돈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병원에 방문해서 약을 처방받는 대신 단지 집에 머물러서 찬송을 부르거나 명상을 할 수 있다. 벤슨은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불가지론자에게도 효과가 있다. 신체는 반복되는 구절이나 행동에 생리학적인 반응을 한다. 우리는 환자들에게 신념을 심어줄 수 있다. 그들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소', '슈마 이스라엘', 혹은 '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생리적인 반응도 일어나면 좀더 영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들이 좀더 영적이라고 느끼게 되면 아픔이 덜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 의과대학(Columbia University 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의 리챠드 슬론(Richard Sloan)은 "일반 대중, 의사 개개인, 그리고 미국 의과대학이 기도와 건강을 연결하려는 이러한 생각을 무비평적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것 때문에 곤란에 빠졌다."라고 말했다. 슬론과 몇몇 동료들은 쾨닉과 벤슨이 인용한 연구를 비평하면서 "이 연구들은 잘 설계되지 못했으며, 결론도 막연하지만 종종 상반되는 결과를 보인다."라고 하였다.  

이런 연구중의 하나가 초월명상의 고향(초월 의학이라고 해야하나?)인 '마하리쉬 종합대학의 마하리쉬 베다 의과대학'의 부교수인 암파로 카스틸로-리치몬드가 주도한 것이다. 이 연구는 6개월에서 9개월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명상(초월명상)을 한 60명의 흑인이 "경동맥의 내막과 중막의 비후(intima-media thickness, IMT)"가 -0.098 mm (95% CI -0.198 to 0.003 mm)만큼 현저하게 줄어든 반면, 대조구에선 0.054mm(95% CI -0.05 to 0.158 mm) 가 증가(P=0.038, 2-tailed)했다"는 것을 보였다. 이 연구는 초월명상을 실시했다. 초월명상의 옹호자들은 초월명상은 초월명상의 마스터들에게서 배워야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결과에는 경제적인 이익이 관여하고 있다. 그 사실이 자체로서는 실험결과를 부정할 수 없지만, 연구 전반에 걸쳐서 적절한 프로토콜과 대조구가 믿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어쨌거나, 카스틸로-리치몬드는 "우리는 이 치료를 현재 약리학적 요법의 보조수단으로 이용했다. 우리는 환자들이 현재의 의학적인 치료법을 이러한 형태의 명상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초월명상 연구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어떻게 건강상의 중요한 변화라고 해석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매일 40분간을 명상하는 사람은 명상하는 시간 만큼 더 오래살 게 되는가? 만약그렇다면, 명상의 잇점은 무엇인가? 관상동맥의 혈관이 다른 사람들보다 0.15 mm 두꺼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현저하게 심장마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과학적인 연구인가, 아니면 모든 과학과 경험이 근거하고 있는 전제들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인가를 명백히 해야한다. 중재기도는 나중 것에 해당한다.

반면에, 내가 만역 시니컬하다면, 나는 이들 신앙치료 "과학자들은 일부러 거짓 희망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거짓말이 걱정을 덜어주고 사람들이 고통속에서도 좀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준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좀 이상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õ ׸ : curse, miracles, pious fraud, positive-outcome bias, psychic surgery, and substance abuse trea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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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 comments

Randi, James. An Encyclopedia of Claims, Frauds, and Hoaxes of the Occult and Supernatural (N.Y.: St. Martin's Press, 1995).

Randi, James. The Faith Healers (Buffalo, N.Y.: Prometheus Books, 1987).

Randi, James. Flim-Flam! (Buffalo, New York: Prometheus Books,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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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Todd Car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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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09/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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